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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여기에있다!/nice place

불국사 비로전 단풍나무군락... 1995

by mooksu 2012. 9. 10.

불국사 비로전 앞마당의 빛과 기억... 1995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잊혀 지지 않는 풍경에 대한 기억이 있다. 대상에 대한 인간의 지각은 어떤 면에서 간사해서 상황과 사건, 자신의 그날 심리상태 등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 낯선 곳에서의 예기치 않는 만남이나 기대하지 않았던 사건 등의 경험을 하였을 때, 그 경험은 시간이 지나도 좀처럼 자신의 마음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기억으로 자리 잡는 것 같다.

  17여년 전, 천년고찰 불국사 경내 비로전 앞마당이 앞마당 주변에 있던 붉은 단풍나무와 함께 내게 보여준 ‘빛과의 합창’은 내 마음을 뒤흔드는 울림이 되어, 내게는 잊혀 지지 않는 풍경 중의 하나로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다.

 

1995년 대학원 추계 고건축 답사 때 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답사 기간 중에는 천년고찰 불국사 답사도 다른 지역과 함께 있었다. 불국사는 너무 유명해서 한편으로 넘 식상한 곳 아니던가. 대한민국 사람들 치고 불국사를 적어도 세 네번 안간 사람이 어디 있다던가. 불국사가 이번 답사 코스에 있다는 것에 대한 우리 연구실의 반응은 어떠했는가. "야~~! 거길 또 가야 해~~?" 불국사를 탐방하는 날 아침, 답사버스에서 답사를 주관하는 한국건축사 연구방 선배들의 사전 설명에서 다소 위안을 찾으며 불국사 탐방에 나섰다. 선배들은 보다 깊이 있게 불국사를 탐방할 수 있는 즐거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었다.. 국내 현존 최고의 조형미 중 하나의 석탑으로 평가되는 석가탑의 조형성과 완성도의 숙연함은 절대로 한 두번 보아서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라는 조언, 불국사 범영루의 목조건축 축조형식을 띈 석조기단의 중요성과 역사적 의미, 항상 올려다보는 다보탑과 석가탑의 다른 멋을 감상할 수 있는 뷰포인트, 불국사 대웅전을 백운교을 올라 다보탑, 석가탑을 지나 다가선다고 했을 때, 건축물 경험의 과정에서 경험자의 심리적 균형감을 고려한 대상들(석가탑, 다보탑의 조형성에서 오는 심리적 무게감의 차이와 반대로 고려된 범영루 기단과 입면의 장식성)의 절묘한 배치에 대한 해석의 가능성 등의 이야기를 무척 흥미롭게 들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불국사 경내를 들어서자 마자, 제일 먼저 생각난 건 선배님의 이야기 중, 다보탑과 석가탑의 멋을 다르게 느낄 수 있는 뷰포인트에 대한 말이 생각났다. 그래서 곧장 발길을 댕웅전 뒤 무설전을 지나 관음전으로 돌렸다. 선배 말대로 관음전 앞마당에서 담장 위로 보이는 다보탑은 약간 내려다보는 시점이었기에 대웅전과 주변의 회랑과 함께 하나되어 보이는 좀 더 관조적인 느낌으로 다보탑을, 천년의 세월과 함께 불국사를 보고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관음전을 지난 비로전으로 발길을 돌려, 그 사이 중문을 지나 비로전을 드러선 순간, 난 ‘아~~~!....’ 하는 탄성을 지를 수 밖에 없었다. 붉게 물든 단풍잎 사이로 떨어지는 빛의 은은한 파동..., 그 기운은 좀처럼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느낌, 예기치않은 공간이었다.



 ‘ 와~! 어떤 공간을 이렇게 붉게 물들일 수 있을까~~ !’ 물론 저녁노을의 사그러드는 듯한 붉은 빛의 여운, 속리산, 설악산, 내장산 등에서 가을에 만날 수 있는 더 붉고 빼어난 붉은 빛의 환희 등의 공간들이 있다. 그러나 이 공간은 자연의 있는 그대로의 매력이라고보다는, 비로전 앞다당, 그리고 그 옆의 사리탑 보전각, 그리고 담장, 담장 뒤 무설전의 지붕과 흩어진 듯 배치되어 있는 단풍나무군락에 의해서 만들어진 인위적인 공간이었기에 내게는 더 깊은 인상을 주었던 것 같다.

건축의 행위는 지극히 인위적이지 않는가~. 우리 조상들의 옛 조영 행위조차도 실은 인위적인 행위이지 않은가. 건축가를 꿈꾸는 나였기에 자연의 위대함과 숭고함보다도 인간의 인위적인 행위와 자연이 만났을 때 벌어지는 풍경에 더욱 애착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이 곳이 있는 그대로의 공간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배려된 공간이라는 맛에 더욱 감탄했던 것 같다.

 

‘야~ 이런 붉은 기운이 감도는 공간을 설계해서 볼 수 만 있다면, 여한이 없겠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 순간을 사진으로 기록하기 바뻤다. 그리고 한발 물러나 마주본다. ‘ 이런 공간이 어떻게 탄생되었을 까?...’‘음.. 비로전과 그 앞마당의 남향배치, 앞마당 맨 앞자락에 심은 단풍나무, 그래서 오후 햇살이 단풍나무잎에 걸러 빛이 스며들 수 밖에 없구나.’ ‘가만 보자, 단풍나무가 항상 붉은 건 아니야.. 그럼, 바로 단풍나무가 붉게 물든 것은 가을의 어느 때라는 것도 원인이겠구나. 그리고, 오늘 내가 했살 좋은 이 곳에 왔다는 것도 그 원인!’‘만약 비가 왔다면, 아니면 아침 일찍 이 곳을 들렸다면, 이런 경험을, 이런 장면을 볼 수 없었겠지...’



 옛 기억을 더듬으면서 이 글을 정리하고 있다. 지금 어떻게 변했을까 궁금하다. 인터넷을 검색한다. 다음 로드뷰를 검색하니, 2010년 10월 사진이 올라온다. 반갑다. 이 로브뷰에서도 붉게 나무는 물들어 있다. 그런데 어째 쪼금 이상하다. 내가 찍은 사진과 그 붉은 기운의 강도가 다르다. 다시 그 원인을 찾아본다. ‘음..., 10월이라~, 내가 갔던 시절은 11월.,, 단풍이 더욱 붉은 절정 때 내가 갔었었군!.’‘그리고 오히려 그때가 나무가 더 무성했던 거 같네 그려. 왜 일까? 더 오래되었으니, 지금 더 무성해야 되는 것 아닌가?’

‘그래도 어째 그 당시 분위기가 안난다.’(그 당시 내 카메라는 그럭저럭한 50mm 표준 렌즈의 카메라이였기 때문에, 사진발을 담을 수 있는 카메라가 아니었다. 다만, 가능한 대상에 대한 왜곡도 없는 카메라였다. 그래서, 어떤 공간을 담을 때는, 항상 사진들을 짜깁기 하듯이 붙이고 붙여 담을 수 밖에 없었다.)


그래두 좀 이상한데... ’ ‘아~ 단풍나무 한그루가 사라졌구나.... 베어 졌네 그려... 야~!, 이 한그루가 사라진게 이렇게 다른 느낌을 자아내는거야~!!! ’ (정확히는 몇그루가 잘라졌는지는 모르겠다. 내 사진속에도 비로전과 관음전 사이의 나무에 대한 기록은 담겨 있지 않으니깐)

 

새삼 또 작은 깨닫음을 얻는 것 같다.

우리가 사랑하는 공간에 대한 경험과 기억조차도, ‘찰나적이다’라는 것을... 

지어진 건축물은 영원할 수 있어도, 그 곳에 대한 개개인의 소중한 기억은 우연과 찰나와 만날 때일 수 있다는 것을... 과연 난 그 찰나를 건축으로 잡아 낼 수 있을까...

그래도 분명, 어떤 이는 어떤 풍경을 찰나와 우연 속에서 분명 만나리라. 그리고 때론 그 기억이 소중함이 되어 자신의 마음 속에 간직되리라.

그것 또한 건축의 다른 모습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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