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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여기에있다!/한국의 민가

해남 윤선도 고택..... 1995

by mooksu 2012. 9. 6.

은은함, 느긋함, 소박함, 자연스러움....


우리나라 남도지방에는 옛 건축이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이 평야지대에서 수많은 전란에 쉽게 오랜 고택들이 전소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조선시대 집권층이 안동을 기반으로 한 영남권에 오랜동안 집중되었기 때문에 그 경제적 사정과도 관련이 있다고 난 생각한다. 또한 영남지역은 태백산맥 등의 험준한 산들에 둘러쌓여 쉽게 외부인이 잘 접근할 수도 없는 지리적 특성도 있지 않을까 추정해본다.  그러한 연유로 건축학도들이 옛 건축, 옛 주거를 견학하기 위해서 대부분 안동을 중심으로 한 지역을 집중적으로 탐방한다.  이유는 그 곳이 잘 보존되어 있기도 하거니와, 많은 옛 가옥이 남아있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양동마을, 하회마을 거점으로 많은 주택들이 영남지역에는 잘 보존되어 남아있다.  


이 곳은 소위 말하는 남도 1번지를 답사할 때, 들린 곳이다. 윤선도 선생이 살았던 고택으로 현재 그 종손이 거주하고 있다.(1995 답사 당시까지는, 현재는 모르겠다) 이 집의 방문은 참으로 흥미로운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었다.  영남지역에서 보는 옛 가옥의 형식과 태도 자체가 달랐다.  영남지역의 옛 가옥이 상대적으로 엄격한 질서와 폐쇄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면(이를 학자들은 영남지역의 지리적 특성에 기인한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이 윤선도 고택의 경우는 남아 있는 옛집의 형식과 비교하면 매우 파격적인 면이 있는 듯 하다. (그 당시로 돌아가면, 파격적인 형식이 아니었을까?)  사랑채의  정면 툇마루 앞에 또 하나의 매개공간을  둔 사례는 좀처럼 영남지역 옛 집에서는 볼 수 없었던 걸로 기억된다.  역사를 바라보는 것도, 결국 아는만큼 보이고, 보는 사람의 자유로운 상상에 의해서 주관적으로 이해될 수 밖에 없다. (실증을 기반으로 한 학자가 아니기에, 우리같은 사람은 상상의 나래를 펴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런 옛 집을 만나면, 난 언제나 먼저 현재적 관점에서 바라본다.(물론 오류 투성이일 수 있다.)   이 사랑채의 앞의 매개공간을 보자마자, 난 어린시절 처마 밑에서 비오는 날 아이들과 딱지치기 하던 시절이 생각이 났다.   이상하게 그 당시, 우리동네 아이들은 비가와도 집안에서 놀지 않고, 밖에 나와 지붕이 삐쭉나와 만들어진 처마 밑에서 놀기를 좋아했던 것 같다. 그 시절로 돌아간 시점에서, 저절로 탄성이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와!~ 그 때, 우리동네에 이렇게 넓은 처마가 있었음, 비오는 날 팔방놀이에, 말뚝박기도 할 수 있었을 텐데~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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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의 상상의 나래를 접고, 다시금 그 당시 건축학도로서 돌아와서 느낀 것은 이런 것이 남도의 기질, 남도의 자유분방함, 남도의 넉넉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리고 또 다른 추론, 옛 사람들은 꼭 남녘의 따뜻한 빛을 직접 집안으로 끌어들이고자 하지는 않았던 거 같다.  아래 보이는 이 고택의 이 처마공간은 실내로 직접광이 유입되지 않는다. 마당과 이 매개공간 바닥을  비추는 빛이 확산되어 내부에 유입될 뿐이다.  ' 따가운 햇살을 직접 만나기보다는 한번 걸러져 은은히 퍼지는 빛의 환함을 선호했던 것인가?'  '마치 현대인이 한여름 햇살에 선그라스를 쓰는 것 처럼...'   


지금 이 시점, 2012년 오늘, 이 사진들을 다시 본다.  이 사잇공간의 느낌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은근함, 은은함, 자연스러움...  나아가, 느긋함, 소박함, 담백함....  이 땅의 곳곳의 민가, 마을, 장소에서  느꼈던 느낌, 정서와 맥락을 같이 한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의 옛 미학이 무엇무엇이다라는 학자들의 말에 귀울이기보다는, 난 그냥 내가 돌아 본 이 땅의 느낌이 더 와닿는다.  당연히 전문가들의 말은 보편적 지식으로 이해되고, 내 경험은 보다 구체적이고 내게 강렬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언제서부터인가 우리는 이 땅을, 우리가 사는 이 곳을 그 은근함을 뻔뻔함으로, 소박함보다는 과시로, 자연스러움보다는 인위적인 자신감의 결과물로, 느긋함을 성급함으로 채우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이 땅에 지어진 저 수많은 신도시, 청계천복원의 시간과 성급한 과정,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의 저급한 정치논리, 성급함, 뻔뻔함 등을 보라~!)   현재 살고 있는 우리야 그렇다치지만, 수십년 후 이 곳을 살아간 자식들, 후손들을 보면, 왠지 모를 부끄러움을 마음에 불쑥 느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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